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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13일 목요일
2020년 8월 11일 화요일
경상남도 공익활동지원센터 소식지 08.11
"사람책을 빌려드립니다"
여기 사람책 9권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시민사회활동이라는 환경이 척박하고 열악한 시기임에도 한 분야에서 또는 분야를 넘나들면서 온몸으로 시민사회활동이라는 지도를 만들어 오셨던 아홉분의 1세대 선배분들을 사람책으로 빌려 드립니다.
9명의 1세대 선배 활동가들이 몸으로 써오셨던 시민사회활동가라는 지도를 따라 후배활동가들은 조금은 가볍게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힘겨웁고 앞이 깜깜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하는 후배활동가 여러분, 그리고 관심있는 공익활동가분들, 척박했던 시민사회활동, 활동가라는 길을 만들고 그 길을 걸어왔고, 지금도 걷고 있는, 1세대 선배활동가의 생생한 경험과 삶의 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5명이상만 모이면 사람책을 빌려드립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신청 하실수 있습니다.
사람책신청은 여기를 눌러 주세요^^
혹시 링크신청이 불편하신분들은 직접 전화를 주셔도 됩니다.055-719-0204(감병만 실장)
2020년 8월 10일 월요일
경상남도 공익활동지원센터 소식지 08.10
"정보가 모이고 흐르며 재생산되는 열린 플랫폼"
경상남도 공익활동지원센터 소식지 08.10
인권,자주,평화를 위하여 이경희대표2
빛과 어둠, 어느 것이 진짜 세상인지?
큰아버지댁과 할머니 대가족 속에 자랐다.
<출처> Late Bloomer 님의 블로그(클릭)
이경희에게 어린 시절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스스로 철이 늦게 들었고 둔한 것이 혼란한 데서 성장한 탓이라 여겼다.
이경희는 1948년 12월 23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 단독정부가 수립되던 해에 태어나 1년 반 만에 6.25가 터졌다.
피난 길에 어머니 등 뒤에서 경기를 몇 번이나 할 정도로 몸이 약했다.
가족 모두가 서울에서 대구까지 피난을 갔던 것은 큰아버지가 대구에 계셨던 탓이다.
큰아버지는 의사였다. 일제 강점기 대구 의전을 나와 대구에서 개업했다.
큰집은 3층 건물의 큰 병원이 딸린 ㅁ자형 기와집이었다.
하지만 이경희 대표의 집은 피난민 수용소 단칸방이었다.
그 동네는 가난한 피난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고 그곳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다녔다.
피난민이 살던 한적한 마을에는 학교가 없었다. 주소를 큰 집에 두고 큰 집 근처 학교를 다녀야 했다. 동네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거리였다.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거리에는 고향을 잃은 사람들,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들로 전쟁의 흔적이 가득했다. 그들은 배고팠고 헐벗었다. 먼 학교를 걸어가는 어린 경희에게도 그것이 보였다. 불쌍하고 가여워 눈물이 날 정도였다.
피난촌 아이들은 학교를 들어간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어릴 때 같이 놀던 아이가 어느 날 동네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 아이들은 공장으로 식모살이나 애 보기로 마을을 떠났다. 가난한 집에 입이라도 하나 덜어야 했다. 좀 더 크면 공장으로 가거나 남자아이들은 구두통을 메고라도 한 푼이라도 벌어 식구 건사를 해야 했다. 가난은 아이들을 일찍부터 삶의 전쟁터로 떠밀었다.
너무 덥거나 추울 때 몸이 약한 경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신 큰집에서 학교를 다녔다.
어릴 땐 큰 집도 피난민 수용소 둘 다 자신의 집이었다. 철이 들면서 큰집과 자신의 집이 비교가 되었다. 큰 집은 너무 환하고 따뜻했다면 부모님이 사는 집은 석유 호롱불을 켜는 집이었다. 빛과 어둠처럼 깜깜한 곳과 환한 곳으로 대비되었다. 어느 곳이 진짜 세상인지 혼동스러웠다.
친구들은 서울말을 하는 경희를 놀렸다. 생긴 것만큼 다른 것을 숨길 수 없는 것이 말씨였다. 큰 집 사촌 언니, 오빠들도 경희를 사랑했지만 경상도 말씨를 쓰는 사촌과도 섞일 수 없는 이질적인 문화가 존재했다. 큰어머니는 대구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평양 출신이었다. 학교에서도 서울 말씨는 경희를 친구들로부터 주목받게 했다. 몸만큼 마음도 약한 경희는 친구들의 주목을 견딜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이 꺼려졌다. 경희는 말씨로 주눅 들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시민운동을 하면서 자주 기자회견에 나서야 했고 집회에서 연사로 나서야 할 줄 몰랐다.
자주,인권, 평화를 위하여 이경희대표3
격정의 시대를 살았던 큰아버지와 아버지
할아버지는 큰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신식 교육을 시켰다. 대목으로 서울의 계성중고등학교를 지으셨다. 일제강점기하에서도 할아버지는 자신의 기술로 경제적 부를 이루었다. 혼란한 시절 전문적 지식은 자식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리라고 믿으셨던 게다. 하지만 아들들은 일제 식민지 지배에 저항했고 제적당했다.
큰아버지는 수재였고 서울에서 가장 명문인 일본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제일고보를 다니셨다. 하지만 학생운동으로 제적을 당했다. 할아버지는 큰아들을 일본으로 유학을 보냈고, 큰아들은 이번만큼은 아버지의 말에 순종했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대구의전 진학을 권했고 의사로 만들었다.
둘째 아들인 아버지도 공부를 잘 했지만 운동도 잘했다. 식민지 청년으로 일본 학생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선 복싱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었다. 형의 전력으로 제일고보에 입학할 수 없었다. 다른 학교에서 신사 참배하러 갔다가 담배를 피웠다가 제적을 당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또 일본으로 유학을 보냈다. 일본에서 아버지를 유혹한 것은 공부가 아니었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 한국유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큰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말을 잘 들었던 데 비해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강제 결혼만은 피할 수가 없었다. 큰아버지가 대구의 하숙집 딸과 결혼한 것이었다. 작은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다 누군가의 밀고로 대구에 투옥되고 옥사하는 바람에 할아버지는 대구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경상도 며느리를 반대했으나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열렬히 연애했고 결혼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둘째 며느리만큼은 자신이 골라 결혼이 준비되지 않은 아들과 결혼시켰다. 어머니의 친정은 평양이었다. 1944년에 태어난 오빠를 안고 어머니가 친정에 몸조리를 하러 간 사이에 38선이 그어졌다. 갑자기 철도가 끊기고 갈 수도 없고 올 수도 없는 처지에 어머니는 산 넘고 물 건너 남쪽에 있는 아버지 곁으로 왔다.
38선이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고 했을 때는 필사적으로 만났다. 하지만 두 사람은 불화했다.
해방 이후의 정국도 같았다. 많은 독립지사들이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지면서도 바라고 바라던 해방을 맞이했다. 하지만 해방 이후의 정국은 혼란스러웠다. 해방의 기쁨보다 오히려 더 큰 슬픔과 아픔을 주는 전쟁으로 귀결되었다. 아버지를 비롯한 혈기방장하던 젊은이들은 의기를 맘껏 펼칠 수 없었다.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 하나도 없었다. 갑자기 전쟁이 터지고 대구로 피난 오게 된 아버지에겐 대구는 임시거처였다. 형님이 대구에 있었지만 뿌리를 내릴 수 없는 피난민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 유학한 고학력에도 아버지는 인쇄업으로 6남매를 먹이고 입히며 사느라 피난촌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피난촌을 벗어나자 아버지는 병석에 누우셨다.
여성주의 활동가 "이경희" 유투브 링크 바로가기
#경남공익활동지원센타#인향만리프로젝트#이경희대표#수요집회#일본군위안부활동
2020년 8월 7일 금요일
2020년 8월 6일 목요일
경상남도 공익활동지원센터 소식지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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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공익활동지원센터 소식지 08.06
[공유]합니다.
인향만리 이경희 선생님에 대한 글입니다.
이춘 선생님의 블로그에서 옮겨왔습니다.
길을 잃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예의인가?
.... 나희덕의 <산 속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 하는 마산 창원 진해 시민 모임> 이경희 대표는 경남과 창원지역의 시민단체가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경남 1세대 활동가 중 한 분이다.
1948년생, 73세의 이경희대표는 마흔이 넘어서 여성인권운동으로 출발했다.
경남여성회 창립메버로 창원 여성의 전화, 성폭력상담소장으로 지역사회 여성운동의 지평을 넓혀온 주역이다.
지금은 매주 수요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열리는 오동동 인권자주평화다짐비 앞 광장에서 그녀를 볼 수 있다.
여성,인권 평화의 길에 어떻게 들어섰을까?
호주제 폐지에 앞장선 이경희 대표
이경희대표에겐 결혼이 여성운동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의 대부분 여성 운동가들처럼 결혼하면서 ‘나는 시민이 아니고 여자구나’를 느꼈다.
차별과 억압에 민감해지면서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진해 장례 문화중 남장 상주제도가 있었다.
배 타고 떠난 남정네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바닷가 마을의 여자들은 남장을 해 상주 역할을 했다.
가부장제에 기초한 장례문화에는 남자가 없으면 죽을 수도 없는 운명이 보였다.
심지어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한 것조차도 후회가 되었다. 순결의 상징인 흰색 그 웨딩드레스를 입고 순순히 가부장제도 속으로 걸어 들어간 자신을 무모했다고 글을 썼다.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변하는 자신이 한 남자만 사랑하겠다고 만방에 공표하는 결혼식은 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홀어머니의 며느리로 여성의 차별과 억압에 눈떴다.
두 딸의 엄마로서 세상의 불평등을 저항했다. 의식의 확장은 실천의 영역도 넓혀갔다.
딸에게 좀 더 좋은 세상을 안겨 줄 수 있는 다른 분야의 시민운동에도 참여하였다.
여성과 남성 간의 불평등, 노동과 자본의 착취, 생물과 자연의 파괴운동 등으로 세상 전체를 평등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고 생명평화운동으로 연결되었다.
경남진보연합의 상임대표로 진보운동과 <사)하나됨을위한늘푸른삼천> 이사장으로 민간교류 통일운동에도 앞장섰다.
인향만리 사업으로 이경희 대표를 방문한 시기는 이용수 ‘위안부’피해자의 기자회견으로 언론에서 연일 정의연과 윤미향 당선자에 의혹이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언론은 근거 없는 의혹은 부풀리기 바쁘고, 이에 대한 해 명내용을 외면했다. 언론의 왜곡과 침소봉대로 국민의 눈과 귀를 호도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은 정의기억연대와 몇몇 특정인만이 만들어 온 운동이 아니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가 가장 많은 곳이 경상남도다. 이제 생존 피해자는 세 분만이 남았다.
그 분들도 공개를 꺼리고 요양원에서 생명의 불꽃이 꺼져 가고 있었다. 이경희 대표는 어느 날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장례식을 주관하는 상주가 되었고 또 어느 날은 모질게 살아온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생일잔치를 열어드렸다. 하지만 할머니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돌봄만큼 그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이었다.
이경희대표가 머무는 사무실은 소박하다 못해 초라했다. 상근자도 없었다.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창진시민모임 이경희대표는 자신이야말로 일인체제로 운영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회비로는 사무실 운영도 쉽지 않고 상근을 둘 수도 없다. 2007년 창립 이래 월급 한 푼 받지 못하고 있는 이 가난한 단체를 누구에게 넘길 수 있느냐고 걱정했다.
먼 곳의 불빛이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 준다는 시인의 말은 시민활동가들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1948년생 이경희 대표의 삶으로 들어가 보자. 이경희 대표 역시 먼 곳의 불빛을 따라 여성 인권, 자주통일, 평화운동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삶이 또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걸어오는 이의 손을 잡아주길 희망한다.
2020년 8월 5일 수요일
경상남도 공익활동지원센터 소식지 08.05
"정보가 모이고 흐르며 재생산되는 열린 플랫폼"
경상남도 공익활동지원센터 소식지 08.05
"인향만리2 멘토단 사업을 시작하며 그 첫번째로 멘토단에 대해 소개를 하고자 합니다. 지역1세대 선배님들을 한분한분 만나 지역에서 3-40년 시민사회 운동가로 살아오신 치열했던 삶을 기록하고 계시는 이춘선생님께서 블로그에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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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공익 1세대활동가 70세 이상 30년 이상 공익활동 경력 |
모두들 묻는다.
인향만리가 뭐냐고?
''사람의 향기가 만리를 간다고요.''
''사람에 무슨 향기가 있어?
늙으면 악취만 나지.''라고 김영만 의장은 비틀었다.
인향만리사업은
경남1세대 활동가, 70세 이상 30년 이상 공익활동을 한 분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업이다.
사회적 인간의 어떤 활동이 공익과 연결되지 아니한 게 있으랴?
하지만 이들은 세상을 바꾸려 했다.
바늘 하나 꽂기도 어려운 시민운동 상황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불이익도 감수하며 불의에 저항하고 실천했던 활동가들이다.
문명화되면서 인간의 감각은 퇴화되었다.
옛날 인간이 자신의 몸 하나로 세상을 헤쳐나가야
했을 때 시각과 청각으로 감지할 수 없는 것들을 후각이 담당했다. 코로나이후 비대면 라이프가 권장되면서 사람 냄새란 말조차 기억 속에 사라질 듯 하다. 그런데 시각과 청각보다 후각은 숨길 수 없고 오래 기억된다.
사람의 향기는 품격이다.
인간의 품격은 무엇일까?
강자에 무릎 꿇지 않고
가난하고 힘없는 자를 보호한다.
혼자 잘살기보다 같이 잘살고자 한다.
오늘의 양식만이 아니라 미래의 양식을 보호하고자 실천한다.
시류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불의에 분노하고 저항하고
그리고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자신을 성찰하며
한계와 오류에 부끄러워한다.
왜 사람의 향기가 만리를 퍼져나가길 희망하는가?
사람들의 향기가
그립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너무 급격하게 변해와
동시대를 살아나가는 세대들간의 기억이 다르다.
하지만
여전히 청산되지 않고 해결되어야 할 산적한 문제들 속에서 다양한 연령층의 세대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같이 살아간다.
지금까지 세달동안
시민운동 분야의 김영만 의장님,
여성운동 분야의 이경희 대표님,
농민운동 분야의 임봉재선생님을
인터뷰하고 녹취를 기록하고 에세이를 썼다.
그리고 앞으로 이자리에 앉으신 분들을 만날 것이다.
제일 먼저 만난 김영만의장님은 사람들이 짖궂다고 했다.
약점과 아픈 기억만 썼단다.
그렇다.
사람들은 너무 훌륭하고 거창하고 말끔한 꽂길을 선망하면서도 그 이야기가 가슴을 울리지 않는다.
나와 당신들은 어떻게 같고도 다르냐를 묻고 공감하고 또 알고 싶어한다.
70평생 살아온 어떤 사람의 인생이 책 한권이 아니랴만은 남다른 삶의 행로를 선택한 경남공익활동가 1세대활동가들은 시대적 과제에 예민하고 정직하고 치열했다.
후배활동가들은 한발짝도 뗄 수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그들에게 힘을 얻었다.
앞서 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걷기도,
즈며 밟기도,
이 길이 아니라고
새로운 모색을 하며 시대를 헤쳐왔다.
경남 1세대활동가들이 살아온 세월에 비한다면
경천동지할 세상이 도래했다.
그들이 꿈꾸었던 어떤 것은 실현되었고 과제로 남아있다.
오랜 세월 싸워왔지만
친일.친독재세력을 비롯한 적폐청산이 요구되고
세상의 절반이 여성임에도 오래된 가부장제에 따른 편견과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농촌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고
노인들만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이들의 삶이 우리 상상력의 지평을 넓힐 것이다.
<출처> Late Bloomer 님의 블로그(클릭!)
2020년 8월 4일 화요일
2020년 8월 3일 월요일
경상남도 공익활동지원센터 소식지 08.03
"정보가 모이고 흐르며 재생산되는 열린 플랫폼"
경상남도 공익활동지원센터 소식지 08.03
2020년 7월 31일 금요일
경상남도 공익활동지원센터 소식지 07.31
정보가 모이고 흐르며 재생산되는 열린 플랫폼"
경상남도 공익활동지원센터 소식지 07.31
오늘 경상남도 공익활동지원센터는
활동가 심신돌보기 사업에 지원하신분들의 자료를 정리하고, 9월 비젼아카데미를 위한 워크숍장소 실사를 다녀오고, 8월초에 있을 공익촉진위원회에 보고할 자료를 만드느라 몸과 마음이 바쁜 날이었습니다.
2020년 7월 30일 목요일
경상남도 공익활동지원센터 소식지 07.30
정보가 모이고 흐르며 재생산되는 열린 플랫폼"
경상남도 공익활동지원센터 소식지 07.30
1.김해시 먹거리보장 시민위원회 발족
성공적인 김해 푸드플랜 수립및 추진을 위해 시민의 의견이 반영되고 지역의 공동체적 공감대 형성을 통한 계획수립및 실천을 위해 (가칭) 김해시 먹거리보장 시민위원회가 출범을 위한 발족식이 있었습니다.
이후 위원회는 참여형 먹거리 계획 수립 및 관련 정책을 발굴하고, 먹거리 정책에 대한 공동학습 기회를 가지며, 먹거리 조례 제정 추진을 통해 제도화를 이끌어내기위한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기로 하였습니다.
2020년 7월 29일 수요일
경상남도 공익활동지원센터 소식지 07.29
정보가 모이고 흐르며 재생산되는 열린 플랫폼"
경상남도 공익활동지원센터 소식지 07.29
오늘 간담회에는 관련 단체가 참여하여, LH청년임대주책 공급현황에 대해 공유하였으며, 사림동 청년임대주택 사업계획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주요한 논의로는 임대주택내 공간 활용 방안에 대해 심도깊은 논의가 진행되었으며
공간구성과 관리운영에 대한 의견도 나누고 향후일정에 대해 공유하고 2시간여의 간담회를 마무리하였습니다.
2020년 7월 28일 화요일
경상남도 공익활동지원센터 소식지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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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공익활동지원센터 소식지 07.28
1.공익활동활성화를 위한 통영시민 토론회개최
통영리스타트플랫폼에서 경상남도 공익활동지원센터가 주최하고 통영시지속발전협의화외 통영시문화도시추진위원회가 주관을 한 "공익활동활성화를 위한 통영시민 토론회"가열렸습니다.
조유묵 마창진 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과 이종은 센터장이 발제를 해주셨고 자유로운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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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활동의 현황을 비롯해 앞으로의 과제, 시민운동의 방향과, 코로나 시대에 따른 시민운동의 변화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배정된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해주셨는데요 시민사회 활성화의 주체가 누구인가? 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시민사회에 집행되는 예산의 방향, 중간지원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시민사회활동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처럼 장기적인 비전에 대한 지속적인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 이루어진 토론이라 모든 내용에 대한 결론을 낼 순 없었지만 시민사회활동에 관심있는 시민들의 생각을 듣고 이야기 해보았다는 것에서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